시청일: 20081116 日
이집트 황금 제국의 비밀 - 1.왕국의 탄생
이집트 황금 제국의 비밀 - 1.왕국의 탄생
<신왕국> 시기에 유명한 왕들로는 람세스, 네페르티티, 투탕카문이 있었다.
BC 1560년 이집트에 위기가 찾아왔다. 북쪽에서는 힉소스 Hyksos, 남쪽에서는 누비아족 Nubians이 침입하여 나일강가에 길게 자리잡은 이집트를 삼등분했다.
북쪽은 힉소스, 중간은 테베를 수도로 한 이집트, 남쪽은 누비아. 이러한 구도로 이집트는 이방민족에 의해 150년간 다스려졌다.
북쪽은 힉소스, 중간은 테베를 수도로 한 이집트, 남쪽은 누비아. 이러한 구도로 이집트는 이방민족에 의해 150년간 다스려졌다.
+자히 하와스: 이집트 문명위원회 위원장
테베의 왕자 카모세와 아흐모세는 형제지간이었다. 이들의 아버지는 힉소스에 반기를 들다가 죽임을 당했다. 이로 인해 왕자들은 힉소스에 원한을 가졌다.
+3500년이 지난 지금 카모세와 아흐모세의 아버지 유골에는 잔인하게 죽임을 당한 흔적이 남아있다. 두개골에는 여러 개의 도끼자국도 남아있다.
+이집트인들은 주변 민족이 미개하고, 그들보다 자신들이 우월하다고 생각했었다.
+기자의 피라미드군은 이집트 고토회복 사명의 정신적 지주같은 존재가 되었다.
카모세와 아흐모세는 후에 힉소스를 무찌른다. 그러나 초기에 이집트인의 대다수는 힉소스의 통치에 만족했다. 그러나 힉소스의 밀사가 카모세의 부하들에게 붙잡힘으로써 이집트인은 위기를 의식한다. 힉소스의 밀사는 누비아로 내려가던 중 카모세의 부하들에게 잡혔는데, 밀사가 가진 서신의 내용은 누비아에게 북진을 하라는 내용과 함께 이집트를 둘로 나누어가지자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힉소스는 후진국이 아니었다. 힉소스의 고향인 레바티지역의 모든 도시는 요새화 되어있을 정도였고, 병기도 우수했으며, 모두 전사들이었다.
형인 카모세가 20세가 된 해에 힉소스를 향해 진군하여 승리하였으나, 힉소스의 수도 아바리스 Avaris 함락에 실패하고 카모세는 죽었다. 이후에 동생 아흐모세는 10살때 왕위를 받고, 10년동안 전쟁 준비를 한후 힉소스를 향해 진격하여 전쟁을 치웠다.
+이 전쟁에 대한 유일한 기록은 한전사의 무덤에 짤막하게 존재한다.
아흐모세는 승리를 거두었고, 전쟁 기념으로 자신의 도끼를 어머니께 바쳤다. 이로써 이집트는 통일되어 1520년경 신왕국이 탄생하였다. 아흐모세는 승리의 공을 아문 라 신에게 돌렸으나, 이집트인들은 아흐모세를 너무 경외한 나머지 그마저 신으로 숭배했다.
+아문 라는 감춰진 의미란 뜻이다.
아흐모세는 황금을 원해 누비아로 진격하여 승리하였다. 누비아에는 고대 당시 가장 큰 금맥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왕위에 오른 뒤 25년이 지나 아흐모세는 죽었고, 아흐모세의 치세기간 이집트의 영토는 시나이 반도 북쪽에서부터 남쪽으로 누비아까지 확장되었다.
+이 시기를 황금시대라 부른다.
이후(몇대가 지나) 파라오 하쳅수트가 이집트의 수도 테베를 변모시켰다. 신전과 오벨리스크를 세웠는데, 오벨리스크는 무게 300톤-높이30m짜리의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였다. 이 오벨리스크는 신왕국을 특정짓는 기념비이다.
지난 3000년동안 하쳅수트는 왕들의 명단에서 빠져있어 수수께끼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1903년 영국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가 하쳅수트의 무덤을 발견했고, 그 수수께끼는 풀렸다. 하쳅수트가 왕들의 명단에서 빠진 이유는 여자였기 때문이다. 원래 왕비였으나 왕이 죽고 어린 양아들(투트모시스 3세)의 섭정으로 이집트를 다스리다가 하쳅수트 스스로 파라오로 선언하였다.
하쳅수트는 재위기간 내내 파라오인 자신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하쳅수트의 아버지는 투트모시스 1세로, 하쳅수트는 아버지가 자신을 후계자로 지명했다는 거짓주장을 할 정도였다. 자신의 무덤 장례장면벽에 아문신이 자신의 아버지로 둔갑하여 어머니를 수태시키는 장면을 그려놓았다. 이리하여 하쳅수트는 신의 딸이 되었다. 여성성을 감추지는 않았다. 아름답게 꾸몄다. 그러나 파라오는 남자여만 했기때문에 그녀는 남장을 했다. 턱에 가짜수염을 붙이고 남성용 옷을 입었다.
하쳅수트는 기존대신을 쫓아내고 자신이 뽑은 인물을 대신자리에 앉혔다.
가장 총애했던 대신은 세넴무트로 공주양육에 관한 일도 그에게 맡길 정도였다. 그의 가장 큰 공적은 오벨리스크를 세운것이었고, 이후 하쳅수트의 장례사원 건축을 맡았다. 데어 엘 바흘.
+장례사원 근처에 바위를 뚫어 만든 세넴무트 무덤이 발견됨.
세넴무트가 하쳅수트가 연인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하쳅수트는 투투모시스 3세에게 군지휘권을 넘겼다. 군대는 그녀에게 골치거리였다. 하쳅수트는 묘안을 짜네, 500년이 넘게 이집트인이 가보지 못한 곳에 투투모시스와 군대를 무역원정대로 보냈다. 그곳은 푼트Punt였다.
이 묘안은 하쳅수트와 투트모시스 모두에게 이득이었다. 투트모시스 3세는 향료를 얻을 수 있었고, 하쳅수트는 투투모시스3세를 먼 타국에 보낼 수 있어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다.
+향료는 이집트 무역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였다.
하쳅수트가 푼트로 보낸 대규모 원정단은 하쳅수트에게는 향로와 새로운 물건을 가져다 주었고, 놀고있는 군대에게는 일거리를 주었다.
+향료는 이집트 무역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였다.
하쳅수트가 푼트로 보낸 대규모 원정단은 하쳅수트에게는 향로와 새로운 물건을 가져다 주었고, 놀고있는 군대에게는 일거리를 주었다.
하쳅수트 재임기간동안은 비교적 안정적이었다. 왕위에 오른지 22년만에 하쳅수트는 세상을 떠났다.
그의 양아들 투트모시스 3세는 25세가 되어 원래는 자신의 것이었던 왕좌에 올랐다.
투트모시스 3세는 자신을 아흐모세나 카모세와 같은 무사 파라오의 반열에 올렸다.
그리고 하쳅수트의 존재를 말살하는 작업을 하였다. 그녀의 오벨리스크를 벽돌로 막았고, 그녀의 흔적을 이집트 전체에서 모두 지웠다. 하쳅수트의 장례신전초상까지 모두 쪼아버렸다.
+장례사원에서 초상을 없애는 것은 영생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저주였다.
왕들의 명단에서조차 하쳅수트의 이름은 지워졌다.
한 파라오가 죽으면 이집트 주변국가에서 이집트를 침략하는 행위는 이집트 역사에서 빈번했다. 하쳅수트가 죽고서 중동국가들이 연합하여 그 군사들이 메기도 Megiddo에 집단으로 주둔했다. 그들은 투트모시스3세를 얕잡아보고 이집트 영토를 넘보았다. 그러나 투트모시스 3세는 제국의 건설을 꿈꾸고 있었다.
투트모시스 3세가 이끄는 2만명의 군사는 메기도를 향해 진군했다.
+군대에는 서기도 있어서, 모든 군대의 일정과 사건들을 기록했으며 이러한 내용은 카르나크 신전에 기록되었다. 투트모시스3세의 원정내용은 그 정복지를 열거해놓기도 했는데, 이곳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지명이 역사상 처음으로 등장한다.
+군대에는 서기도 있어서, 모든 군대의 일정과 사건들을 기록했으며 이러한 내용은 카르나크 신전에 기록되었다. 투트모시스3세의 원정내용은 그 정복지를 열거해놓기도 했는데, 이곳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지명이 역사상 처음으로 등장한다.
투트모시스 3세는 메기도 하나를 함락시키는 것이 천개의 도시를 함락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당시 메기도로 가는 길은 세가지가 있었다. 이중 두개의 길은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안전한 길이었고, 나머지 길 하나는 단거리였지만 위험한 길이었다. 메기도에 집결한 중동군사들은 이집트군이 쉬운길로 올 줄 알고 그곳에서 기다렸으나, 투트모시스3세는 험난한 길로 군대를 인솔하여 메기도에 모인 중동군사들을 격파했다.
중동왕자들은 성안으로 대피하여 7개월동안 머물렀고, 이집트군은 성을 공격하지 않고 진을 치고 주변마을을 약탈하며 기다렸다.결국 메기도의 중동군은 투항하였다.
+그로부터 수백년 후 계시록의 저자는 인류최후의 전쟁에 관해 서술하면서 메기도를 모델로 삼았다. 그리고 그 전쟁을 아마겟돈이라고 불렀다.
테베로 가져온 수많은 전리품은 카르나크 신전에 모두 기록되었다.
+기록상에는 포로 340명, 적군의 전차 892대, 암소 1929마리, 남녀노예와 아이들 1796명, 적군의 머리를 꽂은 지판이 세개..등등이 적혀있다.
+기록상에는 포로 340명, 적군의 전차 892대, 암소 1929마리, 남녀노예와 아이들 1796명, 적군의 머리를 꽂은 지판이 세개..등등이 적혀있다.
적장의 아이들을 데려와 이집트 식으로 교육시켰다.
투트모시느는 테베로 돌아와 아문 신에게 제사를 지냈고, 아문신은 투트모시스 3세에게 제국을 약속했다고 한다.
투트모시스 3세는 이집트의 영토를 누비아Nubia, 시리아 Syria, 레바논 연안,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일부까지 확장하였다.
이렇게 하여 이집트는 거대한 제국을 단 한명의 파라오가 통치하게 되었다.
이러한 다민족, 다언어, 다문화의 통일국가는 인류역사상 최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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