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聽講/사기와 21세기(完)

[EBS] 김영수의 사기와 21세기.제18강.개혁과 개혁가 - 개혁 대논쟁과 개혁의 당위성

[EBS] 김영수의 사기와 21세기.제18강.개혁과 개혁가 - 개혁 대논쟁과 개혁의 당위성.071002

시청일: 20090202(월)

[사기 편찬시 참고한 자료]
-『춘추(春秋)』공자(孔子)가 편수한 춘추시대 노나라의 역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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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전(左傳)』『춘추(春秋)』를 노(魯)나라 '좌구명(左丘明)'이 해석한 책
-『전국책(戰國策)』전국시대 수많은 제후군의 전략가들이 책략을 서한시대의 '유향'이 모아 편집한 책
-『국어(國語)』춘추시대 8국의 역사를 나라별로 적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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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백가(諸子百家)의 저서들
제자백가(諸子百家) 중국 춘추전국시대(BC 8세기 ~ BC 3세기)에 활약한 학자와 학파의 총칭

[조(趙) 나라의 개혁가 무령왕]

무령왕[武靈王, 재위 BC 325~299] 조(趙)나라의 왕으로 흉노족의 위협을 받던 조나라에 흉노족의 기마전술을 채택해 '호복기사' 정책을 실시하고 기마전술을 익히게 하여 조나라의 군사력을 크게 증강시키는 개혁정책을 실시함

[조(趙) 무령왕의 개혁을 위한 여론 조성 정책]
-80세 이상 노인들의 생활을 보살핌
-선대왕의 원로대신 '비의', '누완'을 기용해 그들의 경륜과 경험에 귀를 기울임
-환과고독(鰥寡孤獨)의 처지에 놓인 백성들을 보살핌

환과고독(鰥寡孤獨) 홀아비, 홀어미, 어리고 어버이 없는 아이, 늙고 자식 없는 사람, 외롭고 의지할 곳 없는 처지의 사람

호복기사(胡服騎射) '오랑캐의 옷을 입고 말 위에서 활을 쏜다.'는 뜻으로 조(趙) 무령왕의 개혁정책을 대표하는 말

무령왕의 숙부로 유교적 이념에 철저해 '호복기사(胡服騎射)' 정책을 반대함
'호복기사' 정책에 반대해 공자 '성(成)'이 한 말: (변화는) 곧의 교화를 바꾸는 것이요. 고대의 도를 바꾸는 것이며 민심을 거스르는 것이고 학자의 가르침을 저버리는 것이며 중국의 풍속과는 동떨어진 것이다.

[조(趙) 무령왕의 개혁정책의 특징]
-노련한 구세대의 경험과 지식을 받아들여 상하의 위계질서, 세대 간의 갈등 문제를 조화시킴
-반대파에게도 개혁의 당위성을 철저히 설득함

曰: 무령왕은 재위 27년째 태자에게 왕위를 선양하고 자신은 주부(主父)의 위치에 올랐다. 그러나 무령왕은 왕자리에서 물러난 뒤에도 진나라를 염탐하고 북방유목민과 전쟁을 치르며 국가에 힘을 보탰다. 
여기까진 좋았으나, 무령왕의 선양으로 나라가 혼란스럽게 되는 빌미를 제공했다. 그 이유는 선양한 아들이 어렸고, 적장자인 '장'이 앙심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반란은 일어났고, 무령왕의 삼촌 '성'에 의해 진압되었다.
그러나 성은 반란의 원인을 무령왕이라 판단하여 무령왕을 궁에 가두고 굶겨죽여버렸다.

[진나라의 개혁가 상앙]

상앙 진[秦]나라 '효공'에게 채용되어 20년간 엄격한 '법치주의[法治主義]'적 개혁정책을 펼친 정치가

초현령[招賢令] 재능 있는 인재들을 초빙하는 포고령으로 진[秦]나라 '효공'이 '목공'의 위업을 계승해 실시함

曰: 상앙은 衛나라에서 태어나서 魏나라 공숙좌의 눈에 띄어 위(魏)나라 왕에게 추천을 받으나 기용되지 못한다. 그 후 진나라로 가서 효공을 만난다.
진 효공이 초현령을 실시하고, 상앙은 진 효공을 세번 만난다.
첫째 만남에서 요순시대, 德治, 仁에 대해 이야기하고, 두번째 만남에서 패자의 길에 대해 이야기하고, 세번째 만남에서 부국강병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진 효공은 마지막 부국강병에 대해 큰 관심을 보여 상앙을 등용한다.

法·術·勢
법가 통치술의 핵심적인 세 요소

§ 중국에는 개혁학이란 학문을 대학에서 가르친다고 한다. 한번 수강해보고 싶다. 우리나라는 개혁이란 이름을 내걸지만, 그 면면을 살펴보면 개혁성향인지 보수성향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정치권에 대한 관심은 없지만, 개혁에 관한 학문을 배워 실행해 보고 싶기도 하다. 적어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이론을 연구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로망 중 하나 아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