聽講/사기와 21세기(完)

[EBS] 김영수의 사기와 21세기.제24강.공과 사를 생각하다 - 『사기』가 제시하는 이상적 관료상(1)

騷儒 2009. 2. 10. 21:52

[EBS] 김영수의 사기와 21세기.제24강.공과 사를 생각하다 - 『사기』가 제시하는 이상적 관료상(1).071011

시청일: 20090210(화)

[관리들에 관한 열전 네가지]

  • 순리열전: 손숙오, 정자산, 공의휴, 석사, 이리
  • 급정열전: 급암, 정당시
  • 유림열전
  • 혹리열전

⇒ 이중 유림 열전을 빼고 나머지 열전들에 대해 강의함. 24강~25강

說: 사마천이 생각한 좋은 관리인 순리 열전에 들어간 사람은 모두 춘추시대 사람들로서 사마천 생존당대사람은 들어가지 않았음.

[순리열전 - 1. 손숙오]
손숙오[孫叔敖] 백성들에게 무조건적인 명령이 아닌 순리에 따르는 덕[德]의 정치를 강조했던 초나라의 명재상

說: 초나라 장왕때 사람. 초야에 묻혀 지내다가 추천을 받아 관리가 된 후 석달만에 재상에 이름.

초나라 장왕[莊王, 재위BC 613~591] 춘추오패 중 하나로 즉위 후 3년간 신하들의 됨됨이를 살피며 기다렸던 왕으로 불비불명[不飛不鳴]의 고사성어를 남김

일화 1: 수레바퀴이야기. 관청의 턱을 높임으로써 자연스레 백성들의 수레바퀴가 이에 맞춰지도록 만들었음.

일화 2: (열자에 나오는 이야기) 높은 지위, 권력, 많은 녹봉을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시기질투와 혐오 그리고 원망을 받는다. 손숙오는 이 세 가지를 피해가는데 있어서 다음과 같이 하였다. 지위의 높음과 권력은 자신을 낮추는 겸손으로서 그에 해당하는 시기질투와 혐오를 피하고, 많은 녹봉은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 원망스러운 마음을 피하였다.

說: 손숙오는 세 번 재상에 임명받고 세 번 재상에 파면당하였다.

[순리열전 - 2. 정자산]
자산[子産] 20세 약관의 나이에 내란을 진압하고 재상의 자리에 오른 정나라의 정치가

說: 27년동안 정치를 함.

[사마천이 사기에 기록한 정자산]
그가 재상이 된 첫 해 소인배들이 경박한 소행을 범하지 않았고, 반백의 노인들이 짐을 나르지 않게 되었고, 어린아이들이 밭을 갈지 않게 되었다. 이년째되던 해에는 시장에서 이중가격이 사라졌다. 삼년째에는 밤에 문단속을 하지 않아도 되었고, 길에 물건이 떨어져 있어도 줍지 않았다. 사년째에는 논밭에 일하고난 농기구를 그대로 놓고 갔다가 다음날 되돌아와도 없어지지 않았다. 오년째에는 사병들이 기록에 오르지 않았다(탈영, 구타 등의 일). 국상기간에도 나라가 잘 다스려 졌다.

제갈량[諸葛亮, 181~234]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정치가 겸 전략가로 한나라 멸망 후 '유비'가 제위에 오르자 재상이 됨

說: 제갈량은 중국 최초로 공직자 재산신고를 스스로 한 사람이다.

주은래[저우언라이 周恩來, 1898~1976] 1949년 공산정권 수립 후 공산당에서 지도적 위치를 유지하며 27년간 중국의 총리를 역임한 정치가

[순리열전 - 3. 공의휴]
공의휴[公儀休] 법을 준수하고 이치를 따르는 일에 엄격했던 노나라의 재상

일화 1: 생선을 좋아했으나, 선물로 온 모든 생선을 돌려보냄. 생선을 돌려보내는 행위 자체를 의미있게 생각하였다.

일화 2: 집텃밭에 난 맛있는 상추를 다 뽑아버리고, 옷감을 매우 잘짠 하인이 있었으나, 베틀을 불태우고 하인을 내쫓았다. 이유는 자급자족하게되면 상추농사짓는 사람과 옷감짜는 사람들이 궁핍해지기때문이라 한다.

[순리열전 - 4. 석사]
석사[石奢] 청렴결백하여 권세를 두려워하는 일이 없었던 초나라 '소왕'때의 재상

일화 아버지가 죄를 짓고 도망. 이를 뒤쫓았으나, 아버지를 잡지 못함. 이에 왕 앞에서 아버지를 잡는 것은 효에 어긋나고, 잡지 못한 것은 법에 어긋나기에 스스로 목을 잘라 자결.

[순리열전 - 5. 이리]
이리[李離] 진[晉]나라 '문공'때의 법관으로 판결을 잘못해 사람을 죽이게 되자 스스로 죽음을 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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說: 
급정열전에는 급암과 정당시에 대한 기록이다. 두 사람 모두 사마천 당시 사람으로서 순리에서 변하는 과도기적 관리의 모습을 기록했다.

시대배경: 진나라의 매우 엄격한 법. 이때문에 진나라가 망하자 후에 한고조 유방은 약법삼장을 실시.

약법삼장(約法三章) 백성들을 괴롭혔던 진(秦)나라의 가혹한 법률은 모두 폐지시키고,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하고, 남을 해치거나 물건을 빼앗는 자는 법에 따라 처벌한다.'는 3가지 조항만 남겼던 한(漢)나라 최초의 법률

중국속담
위에 정책이 있다면 아래엔 대책이 있다

[급정열전 - 1. 급암]

급암 큰 지침만을 강구할 뿐 사소한 일에는 개의치 않는 정치를 지향했던 한[漢] 무제 때의 재상

說: 급암은 특징은 큰 정치 안목과 직언이었다.

위청[衛靑] 누이인 '위자부'가 한[漢]무제의 총애를 받아 황후가 되자 장군으로 발탁된 후 흉노형벌에서 전공을 세웠던 대장군